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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현직자 이야기

독이 되어버린 100년 헤리티지의 영광 - 일본, 독일, 미국 전기차 자율주행 현황 (3편)

등록일
2024-09-27

독이 되어버린 100년 헤리티지 - 모빌리티 3편 (By. 한강뷰)


▶ 1, 2편 읽으러 가기
불타는 전기차, 그래도 결국은 BEV다 (1편)
당신이 알던 중국은 이미 사라졌다 (2편)


◆ 시리즈 순서
1부 - 불타는 전기차, 그래도 결국은 BEV다
2부 - 당신이 알던 중국은 이미 사라졌다
3부 - 독이 되어버린 100년 헤리티지의 영광
4부 - 앞으로 5년, 또 다른 애플이 탄생할 것인가?

 



지난 1, 2편 포스팅을 통해 최근의 화재 이슈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전기차 산업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국가 주도로 단기간에 발전한 중국 모빌리티 산업을 살펴볼 수 있었죠.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AI 르네상스'의 정수가 될 수도 있는 모빌리티 혁명. 그 3부를 시작합니다.

이번 3부에서는 100년이나 이어져온 기존의 전통 자동차 메이커(레거시)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점검할 것입니다.

과연 그들은 모든 것을 건 중국의 판 뒤집기를 막고 오랜 기간 누려온 영광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 찬란했다, 100년의 역사와 헤리지티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1908년에 출시된 포드의 모델 T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를 시점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으며, 인류 문명은 '더 빠른 이동'이라는 편리함과 함께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이후 벌써 116년이 지났습니다. 포드가 만들어낸 자동차 혁명 이후 수없이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기업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 주인공들은 미국, 일본, 독일 기업들입니다.

바로 미국 포드와 GM(쉐보레), 일본의 토요타, 닛산, 혼다. 그리고 독일의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 벤츠, BMW 같은 기업들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 프랑스의 르노 같은 기업들도 수십 년 사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것은 미국, 일본, 독일의 주요 메이커들입니다. 이는 그들의 판매량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별 '판매량'을 보여주는 표.


2022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량을 판 브랜드는 토요타입니다. 무려 770만대 수준의 차량을 판매했습니다.

폭스바겐은 450만대를, 혼다는 무려 360만대를 팔았습니다. 닛산, 포드, 쉐보레(GM)도 판매량 상위권에 위치해 있습니다.

BMW와 메르세데스도 럭셔리 차량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었죠.

이들을 국가 단위로 묶으면 그 비중은 더욱 커집니다. 짧은 기간 사이 엄청난 성장을 이룬 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결국 일본, 독일, 미국 브랜드들이 파이의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상위 10개 브랜드의 시장점유율 총합은 51.4%에 이르고요.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소수 회사들의 찬란한 성과.

이는 100년에 달하는 역사 속에서 쌓아온 각자의 '브랜드 헤리티지' 덕분이었습니다.

토요타와 bmw, 포드의 주요 차량 이미지.


1937년 설립된 토요타는 제조와 공급망 관리의 최강자였습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제조 기술력을 토대로 '토요타는 고장이 안 난다'라는 속설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토요타 생산 시스템(TPS)을 필두로 한 수직/수평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제조 단가를 극도로 효율화하였습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서도 부품 공급과 제조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죠.

이를 바탕으로 높은 품질의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찍어냈고, 일본을 넘어 미국과 동남아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1916년, 1926년 탄생한 BMW와 메르세데스는 차량의 럭셔리화를 추구했습니다.

고품질 고가 전략을 오랜 시간 유지하며 브랜드 헤리티지를 만들었고, 누구나 사고 싶어 하는 '럭셔리 카'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죠.

거기에다 훌륭한 구조공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운동성능을 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고, '운전하기 즐거운' 차량의 이미지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브랜드의 이미지와 기술력, 그리고 마케팅 전략. 덕분에 그들은 럭셔리카 시장의 대표주자이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자의 자리를 쟁취했습니다.

미국의 포드와 GM 또한 100의 대량 생산 역사, 그리고 내수시장을 겨냥한 제품 정책(픽업트럭)으로 꾸준히 높은 판매량을 올렸습니다.

그와 함께 '미국 제조 산업의 자부심' 타이틀을 오랜 시간 지켜왔죠.


100년에 달하는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만들어낸 헤리티지와 브랜드 이미지.

짧은 시간 사이 쌓을 수 없는 것이 브랜드 스토리와 헤리티지였기에 이는 기존 강자들에게 엄청난 메리트가 되었습니다.

이것만 놓고 볼 때 이들은 언제까지나 영원히 자동차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헤리티지가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신규 경쟁자들의 판 뒤집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 그것이 내 발목을 잡다

오랜 시간 공고히 쌓아온 헤리티지와 이미지, 브랜드 충성도는 기존 자동차 기업들의 든든한 뒷배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모빌리티 산업을 지탱하는 축이 바뀌며 100년의 헤리티지는 '덕'에서 '독'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오랜 시간 쌓아온 헤리티지는 그 시간만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BMW와 메르세데스는 고성능, 즐거운 운전, 럭셔리라는 핵심 키워드를 오랜 시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헤리지티의 배경에는 내연기관이 있었고, 강한 엔진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었죠.

하지만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AI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쉽게 기존의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고성능과 구조공학적 완성도, 럭셔리함보다는 소프트웨어 기술력, 수직통합을 통한 차량 전자제어, 혁신이 중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것을 계속 고집한 것입니다.

'토요타' 차량 생산 공장 전경.


토요타의 경우에도 같았습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협력사, 공급사와 만들어온 공급망 밸류체인이 전기차/AI 시대에서는 그렇게까지 큰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차량 제조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수많은 협력사와 동행하기보다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전자제어를 최대한 간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그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죠.


둘째, 기존에 내연기관 또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생산했다는 사실 자체가 독이 되었습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에만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판국에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모두 챙겨야만 했습니다.

당장 내연기관을 모두 버리고 전기차로 넘어가자니 회사의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 뻔했고, 그동안 쌓은 고객층마저도 잃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렇다고 전기차를 버리고 내연기관에만 올인할 수도 없었죠.

어서 빨리 새로운 분야로 갈아타야 하는데 기존의 것 또한 쉽게 놓지 못하는 상황.

하나에만 집중해도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딜레마는 그들의 빠른 조직구조 개편과 전략 설정을 가로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회사 내 기존 내연기관 부서와 신생 BEV & AI 간의 정치 싸움 또한 정체에 기름을 끼얹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 밑 빠진 독, 쏙 들어간 '게섯거라'

그동안 보배 같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지금. 기존 레거시 업체들은 참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EV 부분 실적, 그리고 전략 수정 내용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몇몇 브랜드들의 현황을 살펴볼까요?


▶ 포드의 적자행진

2024년 상반기에 엄청난 적자를 본 '포드'의 전기차 사업부.


오랜 기간 미국 자동차 제조의 상징이었던 포드.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과 Mach-E를 필두로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포드의 24년 2분기 성적표는 과거의 영광과 너무 딴판입니다.

전기차 사업부에서 상반기에만 무려 25억 달러의 영업 손실을 입었습니다(이자, 법인세 차감 전 기준).

3조 34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며, 포드의 주가를 폭락시키기에 충분한 수치였습니다.

이를 판매량과 환산하면 1대당 거의 1억 3,000만원의 손실을 본 셈입니다. 이에 대해 포드는 업계 전반의 가격 압박, 그리고 경쟁 심화로 인한 판매량 급감을 꼽았죠.

이러한 손실이 지속되자 포드는 결국 기존에 세웠던 사업 계획을 취소하거나 지연시키기에 이릅니다.

3열 SUV 신차 계획을 취소하였고, 신형 픽업 모델의 출시도 연기하였습니다. 전기차 생산 목표량도 기존보다 감축시켰으며, 16조원 규모의 전기차 투자 계획도 미루었죠.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 현대기아차 등, 수없이 치고 들어오는 경쟁자에 맞서기 위해 전기차/자율주행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지금.

오히려 역행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 포드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 폭스바겐의 전기차 전환 연기


'폭스바겐' 차량 이미지.

폭스바겐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소프트웨어와 배터리 부문의 적자로 1분기 영업이익이 20%나 감소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리비안 같은 전기차 신생 업체에 7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직 그 결실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전기차 전환 속에서 폭스바겐 CEO는 "향후 10년까지는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모두 양립할 필요가 있다, 다시 내연기관 판매에 주력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죠. (24.04)


▶ 벤츠, 낮아진 가격 경쟁력의 결과?

최근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된 벤츠 EQE 배터리 사건. 이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타 배터리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파라시스'의 배터리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증명되지 못한 배터리 품질과 아직 고도화되지 못한 BMS (배터리 관리 시스템)가 맞물려 일어난 일이었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낮아지는 경쟁사들의 전기차와 경쟁하기 위해 극도의 비용절감을 한 것이 이런 일을 발생시킨 것입니다.



▶ 닛산 중국 공장 폐쇄

'닛산' 본사 전경.


일본차라고 나은 상황은 아닙니다. 토요타, 혼다와 함께 일본 3대장 중 하나인 닛산은 지난 6월 중국 장쑤성에 위치한 창저우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닛산의 중국 전체 생산량의 10%에 해당하는 차량을 만들던 공장이었는데요, 이는 닛산의 중국 내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2023년 닛산의 중국 판매량은 2022년 대비 16% 감소한 79만대를 기록하였죠.

이에 대해 닛케이는 '점점 더 낮은 가격에 괜찮은 퀄리티를 내놓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가장 큰 원인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전기차 침투율이 높아지는 중국에서 더 이상 내연기관으로는 예전과 같은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


전기차 시장 또한 제패할 것이라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기존 강자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 해서일까요?

몇 년 전만 해도 언론 기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던 "테슬라, BYD 게섯거라! OOO가 간다!" "레거시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다 이긴다"와 같은 헤드라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장도 어쩌면 100년이나 이어져온 모빌리티 산업의 지형이 조만간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돌아가는 형세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 우회 수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물론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지금의 격동기를 버텨내보려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하이브리드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토요타입니다.

토요타의 CEO는 그간 전기차 시장의 미래는 없다며 하이브리드가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전기차는 과잉투자, 하이브리드가 답이다", "전기차의 현실이 드디어 드러나고 있다, 세상이 실상을 깨닫는 중이다"와 같은 말을 하며 전기차 산업은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죠.

물론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엔저현상과 전기차가 캐즘을 지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하이브리드가 최고의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자율주행(모빌리티 혁명)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다리'일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토요타'의 각종 차량 라인업.


2023년 전 세계에 1,120만대를 판매한 토요타의 순수 BEV 판매 비중은 1%(10만 4,018대)에 불과합니다.

본격적인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면 발 빠르게 순수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토요타는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충전 시장도

전기차/자율주행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충전 인프라. 레거시 업체들은 여기에서도 선두를 달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 사례는 작년에 큰 화제가 된 NACS(북미 충전 표준) 합류입니다. 테슬라는 현재 전 세계에 6,473개의 스테이션, 59,569개의 충전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분기 마감 기준)

이는 단일 차량 제조사 중 가장 압도적인 숫자이죠. 이런 거대한 충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사의 NACS 충전 규격을 북미 지역의 표준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레거시 메이커는 여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드와 GM, 볼보,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닛산, 혼다, 현대차그룹, 토요타, BMW 등 거의 모든 제조사가 NACS 규격을 채택했습니다.

사실상 100년 역사의 레거시 업체들이 역사가 겨우 20년 된 테슬라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셈입니다.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모여 만든 반 테슬라 충전 동맹인 '아이오나'.


이러한 테슬라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기아차, BMW, 벤츠 등 7개의 회사들은 올해 反 테슬라 충전 동맹을 결성하고 '아이오나'라는 합작사를 공동으로 구축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회사 내 부서들 간의 협업도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7개의 회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아무런 '갈등' 없이 충전 동맹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모빌리티 혁명의 정수. 자율주행은 어떤 상황일까요? 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AI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세 가지는 각각 뛰어난 '알고리즘(인재), 막대한 양의 고품질 데이터, AI 반도체'입니다.

이는 자율주행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통합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성능의 AI 알고리즘을 만든 후, 실제 주행을 통해 모은 데이터 집어넣고 AI 반도체를 활용하여 학습시켜야 하죠.

이 3개의 요소 중 하나만 부족해도 '자율주행 완성'으로 가는 것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요즘입니다.


이에 맞춰 레거시 업체들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 SDV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각종 자동차 브랜드들의 'sdv' 개발 현황을 담은 자료.


SDV는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동차(통합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를 의미하며, 소프트웨어의 일종인 AI(자율주행)을 구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테슬라와 같이 자율주행 부문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일찌감치부터 SDV의 중요성을 깨닫고 모든 차량의 설계 및 개발을 SDV 기초 하에 진행해왔죠.

여타 레거시 업체들도 그 중요성을 느끼고 SDV 전환으로의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실제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 차종의 SDV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죠.

하지만 SDV로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연초 GM과 아우디에서 SDV 전환을 진두지휘하는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사임하는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SDV로의 빠른 전환이 당초 각 회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자율주행 AI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막대한 주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AI 개발 인력을 보유해야 하고, 자사의 차량들을 통해 막대한 도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해야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율주행 시스템 방법론은 테슬라가 2023년 처음 공개한 E2E 방식으로 점점 굳어지는 중입니다.

End to End라는 말처럼, 이는 자율주행 AI가 인간의 별도 규칙 설정 없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창안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자동 학습 접근법이죠.

그동안의 자율주행 AI가 인간이 넣어준 데이터와 규칙, 즉 코딩을 통해 기계적인 학습을 했다면, E2E는 그야말로 AI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해나가는 방식입니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ChaTGPT와 학습법이 유사해서 GPT의 자율주행 버전이라고 비유되기도 하죠.

테슬라를 시작으로 이미 니오, 샤오펑, 리 오토 등의 중국 업체들도 즉시 E2E 방식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개발해 나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독일/일본 업체들은 아직까지 명확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발 빠르게 전략을 수정하고 움직이는 선두주자들과는 조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압도적 격차를 보이는 자동차 브랜드들 간의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량.


자율주행 누적 데이터량 또한 비교가 의미 없는 수준입니다. 2023년 자료만 보더라도 테슬라를와 일부 중국 선도업체들만 의미 있는 데이터를 수집했을 뿐이죠.

물론 다른 업체들도 서서히 데이터 수집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누적 주행량 차이는 앞으로 있을 AI 학습에 있어 큰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만큼 선두주자들도 로보택시 서비스 출시, FSD 상용화 등을 통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H100과 컴퓨팅 인프라

'테슬라' 데이터센터 현황.


도로를 다니며 수집된 막대한 주행 데이터를 가지고 AI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엄청난 규모의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구글, 메타 플랫폼스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H100 반도체를 쓸어 담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각 브랜드들은 자율주행을 고도화를 위해 AI 반도체를 하나라도 더 구해야 합니다.

실제 테슬라는 올 연말까지 H100, H200 총 10만 개를 확보해 슈퍼컴퓨터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텍사스 본사에 AI 훈련용 슈퍼 클러스터인 '코르텍스'를 건설하기도 하였죠.

엔비디아 칩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중국 업체들 또한 정부 주도 하에 자체적으로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아직까지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기업은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을 대량 주문하였으며, 거대 AI 훈련용 센터를 짓는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죠.

그나마 현대차가 가장 먼저 2024 인베스터 데이에서 앞으로 H100 1만개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하며 빠르게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해당 센터를 본격적으로 돌리기까지는 아직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컴퓨팅 인프라에 있어서도 레거시 기업들이 갈 길은 아직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무엇이 문제였나?

높은 제조 경쟁력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자동차 산업을 지배해왔던 기업들.

하지만 산업의 패러티임이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자율주행으로 바뀌며 그들이 쌓아 올린 패권이 흔들리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정말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는 투 트랙

앞서 언급하였듯, 기존 레거시 업체들에게 '갑자기' 내연기관을 다 버리고 전기차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만들어온 판매량도 지켜야 하고, 수익성도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모두 만들며 서서히 전기차로 넘어가야 하는 전략을 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에 올인하며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상황. 투 트랙 전략을 가져가야만 하는 그들은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 투자도 배분해야 하고, 제조 시설도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핵심 인력들도 나누어 배치해야 하죠.

거기에 더해 기존에 내연기관 제조 인프라에서 만들어온 수많은 공급사 밸류체인은 더더욱 전기차로의 전환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쉽게 끊을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투 트랙 전략. 이는 그들에게 분명 독이 되고 있습니다.


▶ 100년 헤리티지의 독

지속적으로 확인한 것처럼 기존의 강자들은 길게는 100년에 달하는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100년이나 잘해왔다는' 사실은 기존에 잘하던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애당초 헤리티지가 없으니 버릴 건 빠르게 버리고 필요한 것만 취하는 중국의 신생 업체들과 달리, 기존 강자들은 빠르게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차량 제조의 방점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도 바꾸는 것도 늦었고, 이미 잘하고 있는 내연기관에 집중하느라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개발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내연기관 및 전기차 부서 간의 사내 정치적 갈등은 변화의 발목을 더더욱 잡기만 하죠.

너무나 오랜 시간 쌓아온 그들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방해한 것입니다.


▶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

가장 큰 원인은 변화하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내연기관 시대에 좋은 자동차의 핵심은 '안전하고 운동성능이 우수한 차량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레거시 업체들은 이 핵심 요소에 집중했고,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을 통해 좋은 차량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달랐습니다. 앞으로의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보다는 자율주행을 필두로 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차량을 '운송 기계'가 아닌 '바퀴 달린 컴퓨터'로 인식하였습니다.

기존 강자들이 더 완벽한 하드웨어 만들기에 집중하는 동안 경쟁자들은 소프트웨어 기반 만들기에 집중했고, 이는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가 오자 큰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제조냐 테크냐.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각 브랜드들의 인식 차이는 시작점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격차는 어느덧 속도의 차이를 만드는 중입니다.



■ 새로운 판, 서서히 흔들리는 영광, 생사를 가를 5년

폭스바겐, 공장폐쇄 등 구조조정 추진… "자동차 산업 심각한 상황" (24.09.03 이투데이)

최근 폭스바겐이 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완성차/부품 공장을 1개씩 폐쇄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독일 내 공장 폐쇄는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점점 더 유럽으로 파고드는 새로운 경쟁자들, 뒤바뀌는 모빌리티 산업 환경 속에서 감소하는 수익성이 결국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 것입니다.

2분기 판매량은 전년 대비 3.8%나 감소하였습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량이 19.3%나 폭락했습니다.

빠른 전기차 전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중국은 더 이상 독일/일본 메이커들의 차를 필요로 하지 않았죠.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중국 내 해외 브랜드 점유율이 2년만에 53%에서 33%로 급락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번 사태에 독일 최대 산업 노조인 IG메탈은 "이번 일은 독일 자동차 제조업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이 만드는 모빌리티 산업의 새로운 판.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무대로 끌려들어 가는 자동차 제조사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기존 강자들의 100년 영광이 점차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폭스바겐과 닛산의 공장 폐쇄 소식은 그 신호탄일 것입니다.

다음 4편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발표 이후 단 5년 만에 뒤엎어졌던 스마트폰-피처폰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과연 모빌리티 산업에서도 5~10년 사이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맞이하게 될 제2의 르네상스. 그 초입부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건 전쟁.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By. KB자산운용 한강뷰

kb자산운용의 내부 필진 중 한명인 '한강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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