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중위님께서 내 돈을 관리해 주셨죠. 무슨 과일회사에다 투자를 했다며, 우린 이제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더군요" (포레스트 검프_1994)
1994년 개봉되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의 대사입니다.
해당 대사에서 지칭하는 '과일회사'는 바로 애플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1994년에 개봉되었다는 것입니다.
1994년, 그리고 애플. 그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1994년 7월) 0.3달러에 불과했던 애플의 주가는 무려 570배 가까이 폭등하며 170달러가 되었고(23.11.01),
이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5번의 주식분할을 고려한 가격)
만약 포레스트가 당시 애플에 2천만원을 투자하고, 이를 지금까지도 보유하고 있다면 이 돈은 현재 114억원이 되어있을 겁니다.
때때로 장기투자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만들어내고 인생을 바꿀 수 있게 해줍니다.
포레스트의 사례,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몇몇 개인투자자들의 장기투자 성공신화 덕분에 많은 투자자들은
"나 장기투자로 성공할 거야!"라는 말을 하며 자신 있게 장투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물론 당장 굳은 마음을 먹은 그들에게는 장기투자가 보여주는 '빛'만이 눈에 보일 뿐입니다.
'2010년대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주가 추이를 한 번 볼까요? 참으로 웅장하기 그지없습니다.
2009년 2달러 수준이었던 주가가 지금은 137달러에 이릅니다.
실제 아마존 장기투자에 성공했던 극소수의 투자자들은 이 한 종목만으로도 경제적 자유를 얻었고, 인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내가 되는 순간을 꿈꾸며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장투의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당신은 기다릴 수 있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장기투자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꽃길만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옥 길을 헤쳐나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각오해야 하는 것은 '나는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가?'입니다.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평균 코스피 종목 보유 기간은 겨우 2.7개월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코스닥으로 무대를 옮기면 1.1개월로 더 감소합니다.
미국은 그나마 조금 더 깁니다. 미국인들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약 5.5개월입니다. 그래도 역시나 많이 짧습니다.
그런데 보통 장기투자는 6년 이상 보유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애플, 아마존, 엔비디아처럼 오랜 기간의 투자를 통해 '확실한 성과'를 얻으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겨우 1.1개월, 길어야 5.5개월 정도 주식을 보유하기 마련인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3년, 5년, 더 나아가 10년이라는 세월을 쉽게 견딜 수 있을까요?
결혼, 주택 및 자동차 구매, 갑작스러운 병원비 등, 우리의 일생에서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가 종종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매도 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 나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약 3개월에 불과한 우리의 평균 투자 기간.
장기투자의 빛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이를 40배 이상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올 '매도 버튼 클릭 욕구'를 어떻게든 참아야 합니다.
당신은 과연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가?
진정으로 장기투자를 시작하려 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정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없는 파도가 생략된 곡선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보기만 해도 슬퍼지는 이 문구들은 슬프게도 장기투자를 지칭하는 말들입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거대한 곡선 안에 수없이 많은 파도가 새겨져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와 엔비디아는 지난 10년간 경이로울 정도의 주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TOP10에 들어가는 기업들입니다.
이 기업들을 보며 정말 많은 서학개미들이 '성장주 장기투자'를 꿈꾸게 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장투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걸어온 지난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은 아름다운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2013년 초, 테슬라의 주가는 2.4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23년 11월 2일 기준의 주가는 218.5달러입니다.
2013년 초반에 테슬라를 매수해서 지금까지 쭉, 장기투자로 들고있다면 그 투자자는 대략 91배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을 것입니다. (환율 변동 미 고려)
하지만 그 10년이 과연 순탄한 시간이었을까요?
주식시장에서는 MDD(최대낙폭지수)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Maximum Draw Down의 약자로, 전고점 대비 하락률을 의미합니다.
MDD가 40%라는 것은 현재의 주가가 해당 기업의 전고점 대비 40%나 하락했다는 뜻이며,
이 MDD의 수치가 클수록, 그리고 높은 MDD가 자주 찍힐수록 높은 변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10년이 넘는 세월 간 90배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한 테슬라는 동일한 시간 동안
MDD가 30%를 넘겼거나 그에 근접했던 순간이 8번이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MDD가 50%를 넘겼던(또는 근접한) 시기도 무려 3번이나 있었죠.
이러한 '대하락기'는 짧게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1년 이상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애플이라고 달랐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포레스트가 애플 주식을 매수한 1997년 이후 애플은 MDD 30% 이상의 순간을 무려 6번이나 겪었습니다.
주가가 가장 크게 하락했을 때는 닷컴버블이 붕괴되던 시기로 무려 80%에 가까운 하락을 맛보기도 하였고,
세계금융위기 시절에도 56%에 달하는 하락률이 찍혔습니다. 물론 -20% 이상의 순간들은 일일이 세는 게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요.
심지어 주가가 가장 폭락했던 닷컴버블 붕괴 시기는 하락장이 무려 4년 10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애플 장기투자 또한 100명이 시작했다면 겨우 2~3명만이 성공했을 수준의 난이도였던 것입니다.
주가가 10%만 하락해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지금이라도 매도해야 하나?'와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는 대다수의 투자자들에게 과연 저런 파도들을 이겨낼 강단이 있을까요?
모두가 처음에는 자신 있게 도전하겠지만, 이 모든 파도를 견뎌내는 자는 정~말 극소수일 것입니다. 그만큼 '상상 그 이상의'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죠.
최고(最高) 조차 실패한다
"제 인내심의 한계는 무한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장기투자가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내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이밍, 그리고 종목 선택에 대한 통찰력(방향성)입니다.
어떤 종목에 투자하느냐, 그리고 언제 사서 언제 파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너무나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베일리 기포드'는 '우리는 수십 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라는 철학 하에 '혁신 성장주 장기투자'를 기본 투자 원칙으로 둔 유명 운용사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4년부터 아마존에 투자하며 막대한 수익률을 낼 수 있었고, 테슬라와 엔비디아는 각각 2013년, 2016년부터 투자를 해오고 있죠.
심지어 현재 세계 시가총액 2등 기업이 되어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1분기부터 23년째 투자를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장기투자' 철학을 가지고 몇 번이나 잭팟을 터트렸던 베일리 기포드조차 언제나 성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조차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베일리 기포드는 mRNA 기술이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2018년 4분기부터 모더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모더나 지분의 무려 12%를 보유하는 수준까지 오게 됩니다.
코로나19 백신개발과 함께 모더나의 주가는 2019년부터 치솟기 시작하여 2021년 하반기에는 거의 500달러에 근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특수상황이었던 팬데믹이 끝나가며 모더나의 주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었고, 경이로웠던 주가는 현재 MDD 80%인 71.23달러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베일리 기포드의 모더나 평단가는 127.13달러. 이미 그들은 손실구간으로 들어간지 오래입니다.
물론 모더나가 다시 혁명적인 신약을 개발하거나 또 다른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며 전고점 이상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베일리 기포드는 좋은 매매 타이밍을 잡는 것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모더나의 비중을 줄이고 있으니까요(23.1Q 6.44% → 23.2Q 4.79%).
손정의 22조 결국 먹튀 당하나…위워크 파산설에 42% 폭락 (매일경제 23.11.02)
알리바바, 그리고 쿠팡에 대한 초기 투자를 성공시키며 투자계의 유명인사로 부상할 수 있었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그도 장기투자 실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때 공유 오피스계의 혜성으로 등장했던 '위워크'입니다.
손정의는 이 회사에 2016년 무려 169억 달러(22조원)를 투자하였고, 이후에도 2020년 11억 달러 등 꾸준히 막대한 자금을 추가 수혈합니다.
분명 소프트뱅크는 위워크가 또 다른 알리바바, 쿠팡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입니다.
부실경영과 CEO의 모럴 해저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높아지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 증가 등으로 인하여
실적과 재무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최근에는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란 소문까지 난 상황입니다.
한때 470억 달러(약 62조원)에 달했던 기업가치는 이제 5,900만 달러(779억원)에 불과하게 되었고, 한때 600달러까지 갔던 주가도 1.11달러까지 수직낙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장기투자는 결국 실패로 끝나가는 중입니다.
최고(最高)들조차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닌 장기투자.
위의 사례들을 보며 얼마나 장기투자가 힘들고 어려우며, 어떤 기업과 타이밍을 선택하느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리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길이기에
"우린 이제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더군요..."
투자를 시작하는 모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처럼 단 하나의 기업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선택받는 이는 그중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장기투자. 너무나 힘들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길.
진정으로 '장투'를 시작하려 한다면 그 길이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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